오늘부터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일본어와는 꽤 오랜 인연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는 드라마도 몇 편 보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혼자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그렇게 약 10년 동안 일본어와 가까이 지내왔다.
신기한 건 어느 순간부터 귀가 뚫렸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자막 없이도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여행 중에 현지인과 간단한 스몰 토킹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을 묻거나 주문을 하는 정도는 전혀 문제없고, 가끔 편의점 직원이나 식당 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작년에 도쿄 여행을 갔을 때 일이 기억난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선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어디서 왔는지, 뭘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고, 일본 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다. 그때 '아, 내가 일본어로 소통하고 있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글을 거의 못 읽는다는 점이다. 히라가나는 그럭저럭 읽을 수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가타카나는 더 헷갈린다. 한자는 아예 손을 못 댄다. 여행 중에 메뉴판을 보면 그림이나 사진에만 의존하게 되고, 간판이나 안내문을 읽으려면 번역 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한자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같은 한자라도 일본어 읽기가 다르고, 문맥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生'이라는 한자만 해도 なま(생), いき(살아있는), うまれる(태어나다) 등 여러 가지로 읽힌다. 이런 복잡함 때문에 글 읽기를 계속 미뤄왔던 것 같다.
듣기는 되는데 읽기가 안 되니까 뭔가 반쪽짜리 같은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대사는 이해하지만 자막이나 제목은 읽지 못하고, 일본 웹사이트를 보려면 번역기에 의존해야 하고. 이런 상황이 점점 답답해졌다.
그러다 지난주에 일본 개발자가 쓴 기술 블로그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번역기로 돌려보니 정말 좋은 내용이었는데, 원문을 직접 읽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 순간 '이제는 정말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완벽하게 외우고, 기본 문법도 체계적으로 정리해볼 예정이다. 한자는...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들부터 천천히 늘려나가려고 한다.
다행히 듣기 실력은 어느 정도 있으니까 문법책이나 인강을 들을 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미 많은 표현들을 귀로 익혔으니까, 이제 그것들이 어떤 문법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목표는 크지 않다. 일본어로 된 기술 문서나 블로그 글을 사전 찾아가며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 만족할 것 같다.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현재 내가 부족한 읽기 실력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10년 동안 자연스럽게 익혔던 일본어를 이제는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늦은 시작이지만, 그래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일본어로 된 소설이나 에세이도 읽어볼 수 있을까? 일단 오늘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