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앱을 처음 써봤을 때의 그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2019년쯤이었나, 당시 금융 앱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복잡했는데 토스는 달랐다. 버튼을 누르면 통통 튀는 애니메이션이 있었고, 색상도 생생했고, 인터랙션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넘쳤다. "와, 이게 금융 앱이라고?" 싶을 정도로 신선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토스의 마이크로 인터랙션들이었다. 계좌 잔액을 확인할 때 숫자가 카운트업되는 애니메이션, 카드를 등록할 때 나타나는 부드러운 모션, 송금 완료 후 나오는 컨페티 애니메이션까지. 이런 디테일들이 단순한 금융 업무를 마치 게임처럼 즐겁게 만들었다. 디자인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체감한 첫 번째 경험이기도 했다.
토스팀이 공개한 TDS(Toss Design System)는 정말 체계적이었다. 컬러 팔레트부터 타이포그래피, 컴포넌트 라이브러리까지 모든 것이 일관되게 설계되어 있었고,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문서화되어 있었다. 특히 '결정 피로를 줄인다'는 철학이 인상적이었는데, 매번 색상이나 여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도록 미리 정해둔 시스템이 정말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 토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요즘의 CSS */
.button {
border-radius: 12px;
background: linear-gradient(135deg, #667eea 0%, #764ba2 100%);
transition: all 0.2s ease;
transform: scale(1);
}
.button:hover {
transform: scale(1.02);
box-shadow: 0 8px 25px rgba(102, 126, 234, 0.3);
}
.button:active {
transform: scale(0.98);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이상한 걸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앱들을 깔 때마다 "어? 이거 토스랑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둥근 모서리, 통통한 버튼들, 비슷한 색상 조합, 거의 똑같은 애니메이션들. 처음에는 '토스가 트렌드를 만들었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는 앱을 켜놓고 어떤 서비스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다.
웹사이트들도 마찬가지다. SaaS 툴들, 핀테크 서비스들, 심지어 이커머스까지 모두 비슷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헤더에 로고, 오른쪽에 로그인 버튼, 메인 섹션에 큰 헤드라인과 그라디언트 배경, 그리고 CTA 버튼. 색상만 바뀔 뿐 구조는 거의 똑같다.
이런 현상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학습 비용이 줄어든다. 어떤 앱을 써도 버튼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작동할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 개발자와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검증된 패턴을 쓰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특히 스타트업 같은 곳에서는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검증된 디자인 패턴을 쓰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브랜드의 개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각 서비스마다 고유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스킨만 바꾼 것 같은 서비스들이 많다. 애플의 Human Interface Guidelines나 구글의 Material Design처럼 플랫폼 가이드라인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천편일률적인 인터페이스가 양산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즘 디자인 시스템의 확산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Tailwind CSS 같은 유틸리티 프레임워크를 쓰면 누구나 비슷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고, Figma의 디자인 토큰이나 컴포넌트 라이브러리들도 표준화된 룩앤필을 만들어낸다.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창의성은 제약받는 느낌이다.
토스의 경우도 초기에는 정말 혁신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혁신이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토스의 성공을 보고 많은 서비스들이 비슷한 디자인 언어를 채택했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가 비슷해져 버렸다. 혁신이 모방으로 이어지고, 모방이 표준이 되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차별화를 위해 일부러 이상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사용자 경험이 우선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진짜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서비스들이 나타나면 좋겠다. 토스가 2019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나타나기를. 아니면 적어도 같은 패턴이라도 브랜드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더 고민해보면 어떨까.
결국 디자인은 균형의 문제인 것 같다. 사용성과 창의성, 효율성과 개성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 토스가 만든 트렌드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다시 "와, 이런 디자인도 있구나" 싶은 서비스를 만나길 기대해본다.